기름값 낮추려고 발버둥 치는 사이, 자동차 산업은 달라지고 있었다
유류세 인하 대신 운전자들이 원하는 것
5년 동안 23번이나 연장된 유류세 한시적 인하 조치
정부가 또다시 유류세 인하 조치를 연장했습니다. 2021년 11월 처음 도입된 이 조치는 원래 6개월짜리 ‘한시적’ 대책이었습니다. 하지만 벌써 23번째 연장, 이제는 ‘한시적’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상시 정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고유가와 물가 상승 속에서 민생 안정을 위한 정부 정책은 분명 필요합니다. 문제는 같은 처방이 5년째 반복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정책은 정말 효과가 있을까요? 그리고 운전자들은 정말 이것을 원하고 있을까요? 그린피스는 답을 찾기 위해 운전자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운전자들이 체감하는 유류세 인하 효과, 그리고 정책 대안
그린피스는 지난 5월 말~6월 초, 전국의 운전자 1,500명을 대상으로 ‘유류세 한시적 인하 조치’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습니다.
결과는 정부의 기대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응답자의 대부분이 유류세 인하 조치를 알고 있었지만, 정작 주유비 절감을 체감한다는 응답은 35.9%에 그쳤습니다.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전쟁·중동지역 불안정으로 인한 국제유가 상승(31.4%), 유류세 인하 폭이 크지 않아서(28.7%), 주유소 판매가가 과도하게 높게 책정되어서(22.2%)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기름값 담합으로 정유사들이 기소된 가운데, 설문 결과에서도 운전자들이 유가 구조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입니다.

그렇다면 운전자들은 어떤 정책을 원할까요? 답은 ‘더 싼 기름값’이 아니었습니다. 응답자의 46.3%는 특정 산업(화물·버스·택시) 종사자 직접 지원에, 44.0%는 저소득층·자영업자 직접 지원(정액 보조금·바우처·환급금 등)에 동의했습니다. 나아가 전체 응답자의 45.3%가 다음 차량으로 전기차를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고, 39.9%는 내연기관차의 전기차 전환 지원금 및 전기차 구매 보조금 확대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운전자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고유가 상황에서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더 집중된 지원, 그리고 출렁이는 유가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아도 되는 미래에 대한 투자입니다.


유류세 인하에 과몰입하는 사이 놓치고 있는 전기차 시장
우리 정부가 여전히 유류세 인하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세계 전기차 시장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에 이어 유럽 시장의 약진이 눈에 띄는데요, 지난 6월, 내연기관차의 본고장인 독일에서 전기차가 처음으로 신차 판매 1위를 달성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올해 상반기 전기차 신규 등록대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2.6% 증가했고, 신차 판매 4대 중 1대가 전기차였습니다. 중동 분쟁으로 인해 3월부터 유가가 폭등하면서 주행 및 유지비가 저렴한 전기차 수요가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장 변화는 산업의 전환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자동차 전통 강자인 독일 기업들은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며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폭스바겐은 10만 명이라는 자동차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을 단행할 예정인데, 전문가들은 ‘낮은 생산성’과 ‘전기차 전환 실패’를 위기 요인으로 지목합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도 중국 시장에서 부진을 겪으며 근본적인 대책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자동차 산업의 판도는 이미 ‘누가 먼저 전기차로 전환하느냐’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유가에 흔들리지 않는 편안한 미래 설계
한국 정부가 23번째 유류세 인하를 발표하는 사이, 운전자들은 이미 다른 답을 내놓았습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업종의 종사자와 저소득층에게 더 집중된 지원, 그리고 유가에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되는 전기차로의 전환입니다. 세계 시장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전기차가 신차 판매 1위에 오르고, 전동화에 실패한 기업들이 대규모 구조조정에 내몰리는 지금, 유류세 인하는 시대의 흐름과도 어긋난 처방입니다.
반복되는 유가 위기 속에서 기름값을 몇십 원 깎아주는 식의 임시방편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유가 변동에도 흔들리지 않는 미래를 설계해야 할 때입니다. 그린피스는 정부가 익숙한 처방을 반복하는 대신, 취약계층 직접 지원과 전기차 전환이라는 근본적인 대책에 나설 것을 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