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3대 메가 프로젝트 발표, 화려한 청사진 뒤 숨은 환경 청구서
“특정 기업과 산업의 성장을 위해 시민이 건강 피해와 사회적 비용을 떠안는 것을 당연하게 치부할 수 있는가?”
지난 4월, 그린피스는 보고서 『허가된 오염의 대가, 보이지 않는 청구서』를 통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해당 보고서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의 LNG 발전소가 30년간 가동할 경우 1,000명이 넘는 조기 사망자가 나올 수 있으며, 그 피해가 용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 대도약’이라는 화려한 수사 속에 진행되는 ‘3대 메가 프로젝트’를 향해 비슷한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이 계획은 모두의 미래를 포함하고 있는 계획입니까?
‘대한민국 대도약’ 뒤에 숨은 30년짜리 환경 청구서

6월 29일, 정부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함께 반도체·AI·데이터센터 3대 분야에 수천 조 규모를 투자하는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했습니다. 막대한 투자 금액만큼 주목받은 것은 주요 시설의 유치 장소와 규모였습니다. 강원권과 울산, 호남과 중부, 세종까지 국내 곳곳에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단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이 중 신규 데이터센터와 서남권 반도체 산단에 필요한 전력만을 합산해도 24.7GW에 달합니다. 이는 원전 18기에 맞먹는 규모입니다. 서남권 반도체 산단에서 사용해야 하는 물의 양은 하루 65만 톤에 이릅니다. 국민 212만 명이 사용하는 물의 양과 비슷합니다. 추가로 필요한 막대한 전기와 물. 바로 이것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투자금 바깥에 놓인 또 다른 환경 청구서입니다.
메가 프로젝트에 필요한 전력과 물을 어떻게 수급할지 뚜렷한 대책이 나오지 않은 지금, 벌써부터 전남 광주 인근에 LNG 발전소를 짓는 방향이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정부는 원전과 SMR(소형모듈원자로)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거듭 강조되는 ‘속도전’ 속에서 환경영향평가와 강제 수용 절차를 최대한 단축해야 한다는 논의마저 진행되고 있습니다.
속도전, 거점전, 선도전. 메가 프로젝트에서는 AI와 반도체 시장을 승리를 위한 전쟁터로 가정한 용어들이 자주 사용됩니다. 그러나 여느 전쟁이 그렇듯, 승리해야 한다는 이야기 바깥에서 무엇이 희생되는지는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습니다.
지구의 생태한계선, 메가프로젝트도 예외는 아닙니다
무엇이 희생되는지 알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돌아봐야 합니다. 2022년 기준,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온실가스 배출 6위입니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화석연료 중심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수자원이 풍부한 나라'라는 말은 옛말이 된 듯, 감사원과 정부 등은 기후위기로 인한 물 부족을 전망하고 있습니다.
안전성 문제와 핵폐기물 처리가 따라붙는 원전. 건강 피해를 유발하고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화석연료인 LNG. 이 두 가지 전원은 메가 프로젝트로 인해 다시 현실적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특정 산업의 진흥을 위해 기후위기로 사라져가는 수많은 존재들과 지역 주민의 희생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더욱 중요한 점은 이 계획이 미래의 산업 경쟁력을 위해 필요하다는 논리로 추진되지만, 실상은 미래가 아닌 현재만을 위한 계획이라는 것입니다. 30년이 넘는 수명을 가진 LNG 발전소와 원전은 미래 세대가 태어나고 살아갈 시간대를 위협하는 기재가 될 것입니다.
막대한 물과 전력 소모량이 보여주듯, 지금의 계획은 지구 환경이 자정 작용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범위, 즉 '생태한계선'을 넘는 일이기도 합니다. 현재의 이익을 위해 생태한계선을 넘고 미래로 리스크를 떠넘기는 지금의 계획. 과연 정의로운 선택일지 묻고 싶습니다.
‘속도전’ 대신 정확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그린피스는 지난 수년 동안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LNG 발전소 부지 주변에 사는 주민들과 함께하며, 빛나는 산업 경쟁력 뒤에 지역 주민들이 짊어진 피해와 권리 침해 문제를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메가 프로젝트의 문제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의 LNG 발전소 문제와 매우 닮아 있습니다. 두 문제는 ‘환경영향평가’라는 부실한 제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환경영향평가는 사실상 ‘선 허가, 후 평가’로 진행됩니다. 사업 허가가 난 후에 환경 영향 평가가 이루어지다 보니,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되더라도 사업 자체를 변경하거나 재검토하기가 어렵습니다. 용인 주민들의 피해와 환경 파괴 논란에 휩싸인 수많은 개발 사업들도 마찬가지 실정입니다.
그런데 메가 프로젝트에서는 이미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를 최대한 신속히 진행하거나 아예 생략하는 방안까지 논의되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안전망조차 기대하기 어려워질 위기에 놓인 것입니다.
자연환경 훼손, LNG와 원전 확대에 따른 안전 문제와 기후위기 심화, 지역 주민의 건강 문제와 미래 세대의 권익 침해까지. 메가 프로젝트로 예상되는 피해는 수천 조의 투자금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검증입니다. ‘선 허가, 후 평가’의 순서를 바꾸고, 발전원의 누적 배출량이 아닌 연간 배출 전망치에만 의존하는 협소한 온실가스 평가 방식도 시정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계획이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와 공존할 수 있는 것인지 철저히 평가해야 합니다.
미래의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정작 우리가 살아갈 진짜 미래를 위협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막대한 에너지와 수자원이 필요한 거대한 계획일수록 시민의 안전과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기본 원칙이 함께 고려되어야 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맹목적인 ‘속도전’이 아니라, 환경적 영향을 투명하게 짚어보는 ‘제대로 된 검증’입니다. 메가 프로젝트가 던진 환경적 질문들에 대해 정부와 기업이 책임 있는 대답과 명확한 대책을 내놓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