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연구팀이 밝혀낸 한국 산불의 새로운 패턴
올해 2월, 전국 여러 곳에서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산불 시즌이라고 불리던 봄이 오기도 전에, 이미 산불이 시작되고 있는 겁니다.
봄철에 국한됐던 산불 위험이 기후위기로 인해 달라지는지를 확인하고자, 그린피스는 카이스트 메타어스 연구센터와 함께 1년간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기후위기 시나리오별로 한국의 산불 위험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정량적으로 분석한 연구입니다.
*보고서 전문은 이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상의 지구 다섯 개를 비교하다
연구팀은 ‘메타어스(MetaEarth)’라는 가상지구 플랫폼을 활용했습니다. 과거 인간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 없던 산업화 이전의 지구와 현재의 지구, 그리고 기온이 1.5도·2도·4도 상승한 미래의 지구를 각각 시뮬레이션해 산불 위험도를 비교하는 방식입니다.
이번 연구의 특징은 정밀도에 있습니다. 기존 기후모델은 수십 km 수준의 해상도를 갖고 있어, 산악지형이 복잡한 한반도의 지역별 기상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연구팀은 이를 2km 해상도까지 정밀하게 변환해, 지형과 토지 특성에 따른 미세한 기후 차이까지 반영한 산불 위험 분석을 수행했습니다.
산불 위험의 기준 지표로는 국제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산불위험지수(FWI)를 적용했습니다. FWI는 기온, 습도, 강수량, 풍속 등을 종합해 산불 발생 및 확산 가능성을 수치화한 지표로, FWI 20 이상은 대형 산불이 발생할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높아지는 구간으로 분류됩니다.

4월이던 산불 위험, 1월로 앞당겨지다
연구 결과, 연중 처음으로 FWI가 20 이상에 도달하는 시점, 즉 산불 위험이 시작되는 시점이 뚜렷하게 앞당겨지고 있었습니다. 산업화 이전에는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4월에 산불 위험이 시작됐으나, 현재는 전국 평균 13일 빨라졌습니다. 기온이 1.5도 오르면 35일, 4도 오르면 59일까지 앞당겨집니다.
지역별로 보면 변화폭은 더 큽니다. 전라남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110일, 경상남도는 86일, 부산은 70일이나 조기화됐습니다. 경상북도의 경우 산업화 이전에는 4월 초에 시작되던 산불 위험이, 기온이 4도 상승한 지구 모델에서는 1월 말로 앞당겨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해 2월에 잇따른 산불 발생이 단순한 이례적 사건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이 데이터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67일에서 336일로, 1년 내내 산불 위험
산불이 빨리 시작되는 만큼, 산불 위험 기간도 함께 늘어나고 있습니다. 산업화 이전에는 연간 평균 67일이던 산불 위험 기간이 현재는 102일로 늘었습니다. 1.5도 상승 시 평균 163일, 4도 상승 시에는 평균 214일, 최대 336일까지 증가합니다.
4도 상승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시도별 분석을 해보면, 울산(327일), 대구(314일), 경북(298일), 광주(289일) 등 남부 대도시권에서 연중 대부분을 산불 위험 상태로 보내게 됩니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은 산업화 이전 대비 위험 기간 증가폭이 가장 커서 약 190일 이상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장마가 산불을 막아주던 시대의 끝
어쩌면 이번 연구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결과는 이 부분입니다. 현재까지는 여름 장마철에 습도와 강수량이 높아지면서 산불 위험이 일시적으로 낮아지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현재 시나리오에서 6월의 FWI는 산업화 이전보다 오히려 낮았고, 전국 면적의 약 85%에서 위험이 감소했습니다.
그러나 기온이 2도 이상 오르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2도 상승 시나리오에서는 6월에도 전국의 약 98% 지역에서 FWI가 상승했고, 4도 상승 시에는 장마철을 포함한 전 기간에서 산불 위험이 산업화 이전을 상회했습니다. 산불을 계절적으로 억제해 온 자연의 완충 구조 자체가 기후위기 앞에서 무너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재난 대응과 기후위기 대응은 따로 갈 수 없다
이번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산불의 시작 시점, 지속 기간, 계절적 완충 구조까지 모두 기후위기에 의해 바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산불 대응 정책은 더 이상 기후위기 대응 정책과 분리해서 설계할 수 없습니다.
현재 정부의 재난 대응 체계는 과거의 산불 패턴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연구가 보여주듯, 산불의 패턴 자체가 기후위기로 인해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는 대응 체계를 정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산불 위험을 키우고 있는 근본 원인에 대한 대응, 즉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 적응 정책이 산불 대응의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린피스는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기후위기에 기반한 재난 대응 체계로의 전환을 정부와 국회에 지속적으로 요구해 나가겠습니다. 그린피스의 기후재난 대응 활동이 계속될 수 있도록 지금 함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