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거제 수해 현장: 기록적 폭우 앞에 멈춰선 지자체 대응과 예고된 참사
2026년 8월 11일, 경남 지역에 소방동원령이 내려지자, 물탱크차 200대와 소방 인력 400명이 긴급 투입되어 농업·생활용수 공급에 나섰습니다. 심각했던 가뭄은 불과 일주일 뒤인 8월 18일, 호우경보가 발효되며 극한 호우로 돌변했습니다.
특히 거제는 1시간 동안 124.5㎜의 '극한 호우'가 쏟아지며 앞선 폭우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이는 거제의 평년 여름철 전체 강수량(935.1㎜)의 90% 이상이 단 사흘 만에 쏟아진 셈입니다. 기상청은 이번 호우를 두고 '200년, 혹은 100년 만에 한 번 나타날 수준'이라며 그 심각성을 설명했습니다.
가뭄 뒤 덮친 거제 극한 호우: 고현버스터미널 및 도심 침수 현장
현장 조사를 위해 이동하는 길은 시작부터 험난했습니다. 도로 곳곳이 유실되어 접근이 차단되었고, 거제 고현버스터미널 일대마저 침수로 통행이 마비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다행히 시외버스 운행이 재개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서둘러 거제 고현버스터미널로 향했습니다.
통영을 지나 거제대교에 다다르자, 곳곳에 남은 수해의 상처가 역력했습니다. 도로변에는 산에서 굴러떨어진 돌들이 나뒹굴고 있었고, 논밭은 흙탕물에 잠겨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도심 주변 산비탈에서는 여전히 쉴 새 없이 물줄기가 도로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긴박하게 움직이는 소방차와 봉사자들의 모습이 이곳의 심각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고현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침수의 흔적은 더욱 처참했습니다. 터미널 인근 도심 상가들은 깊은 상흔을 입었습니다. 침수된 가구와 살림살이들이 길가에 쏟아져 나와 있었고, 지하에 들어찬 물을 빼내기 위한 양수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자원봉사자와 이재민들이 엉망이 된 짐을 끄집어내는 모습에서 복구의 절박함이 그대로 묻어났습니다.
이후 산사태 현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아파트 입구부터 중장비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한쪽에 놓인 차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는데, 당시의 충격이 얼마나 거셌는지 짐작게 했습니다.

극한 호우로 지반이 약해진 상태에서 급경사지가 무너져 내리며 산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밀려온 토사가 아파트 저층부를 그대로 덮치면서 건물이 파손되고 인명피해까지 발생했습니다. 주민들은 인근 초등학교로 긴급 대피해 있었습니다.
인근 대피소에는 90여 세대가 머물고 있었습니다. 구세군이 급식을 제공하고 개별 텐트가 지급되었지만, 여러모로 생활의 불편함이 커 보였습니다. 한켠에는 공무원과 심리 전문가들이 상주하며 이재민들을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마을로 이동하는 과정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도로가 산사태로 끊겨 멀리 돌아가야 했고, 급한 차들은 위험천만한 구간을 간신히 건너기도 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신수남 님은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해주셨습니다. “밤에 갑자기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불안해서 나와봤더니, 집 뒤에서 물이랑 흙이랑 막 밀려 내려오는데 정말 무서웠어요.” 그의 집 안팎에는 당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마당은 온통 뻘로 가득 찼고, 밭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돌과 흙으로 뒤범벅되어 있었습니다.

기후재난에 맞선 연대: 거제에서 협업하는 긴급구호 단체
거제 수해 소식이 전해지자 새마을회, 적십자, 의용소방대 등 지역의 다양한 봉사 단체들이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와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전국 단위의 긴급구호 단체들까지 속속 합류하며 현장은 도움의 손길로 분주해졌습니다.
재난 현장에서 서로 마주칠 일은 많았지만, 이번처럼 긴밀한 협업의 기회를 만든 것은 뜻깊었습니다. 원불교 봉공회를 중심으로 우리는 거제시자원봉사센터와 미팅을 통해 피해 상황과 시급한 소요를 빠르게 파악했고, 각 단체가 모여 현장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했습니다. 특히 피해가 극심했던 둔덕면은 한 단체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워, 여러 단체가 역할을 나누어 지원 물품을 효율적으로 배분했습니다. 조사 구역을 분담해 사각지대 없이 피해 현장을 살피는 등 협업의 시너지가 빛을 발했습니다.

투입된 현장에서의 협력은 더욱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침수 피해를 하둔리 마을회관에선 주민들이 턱없이 부족한 청소 도구를 들고 발을 동동 구르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즉시 타 단체와 연계해 필요한 청소 도구와 간식을 신속히 전달했습니다. 상서마을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사팀이 식수 부족 상황을 긴급히 타전하자, 시내 근처에 있던 팀이 즉각 식수와 구호 물품을 실어 나르며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예고된 거제 산사태 참사: 지자체 행정 공백이 키운 기후 피해
산사태로 피해를 본 아파트는 산림청의 산사태 위험 지도에서 이미 ‘1등급’으로 붉게 표시된 위험 지역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정부가 예방 조치를 취하는 ‘산사태취약지역’에는 지정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취약지역으로 관리되었다면 호우경보 발령 시 선제적인 대피 조치가 가능했을 것이기에 더욱 안타까움이 남습니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사고 이후의 모습입니다. 거제시는 사태 수습보다 ‘산사태 인정 여부’를 두고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입니다. 산림 담당 부서는 “아파트 대지 내 발생이라 산사태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다른 부서는 “인근 임야가 함께 무너졌으니, 산사태로 봐야 한다”라며 서로 공방을 벌이고 있습니다.
침수 피해를 본 하둔리 마을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곳은 행정안전부의 ‘2022년 풍수해 생활권 종합 정비사업’ 지구로 선정되어 국·도비 280억 원을 포함한 431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습니다. 단일 사업으로는 최대 규모였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삽 한 번 뜨지 못한 채 수해를 맞이했습니다.

“공사를 하기로 했으면 진작 진행했어야지. 상습 침수 지역이라 예산까지 받아놓고 도대체 무엇을 한 겁니까?”
현장에서 만난 김언조 노인 회장님의 목소리에는 깊은 분노가 서려 있었습니다. 지자체의 무대응과 늑장 대응이 결국 예고된 피해를 막지 못한 것입니다. 기록적인 폭우도 문제였지만, 미리 대비만 철저히 했더라면 충분히 줄일 수 있었던 피해였다는 점에서 행정의 부재가 뼈아픈 대목입니다.
일상화된 복합재난: 사후 복구를 넘어선 근본적 기후위기 대비 시급
기후위기로 인해 가뭄과 폭우, 산불과 수해 등 여러 극한 기후 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복합재난의 위협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그린피스와 김형준 KAIST AI미래학과 교수팀이 최근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복합재난의 강도는 3배 증가했고, 극심한 복합재난 일수 역시 최대 4.8배나 늘어났습니다. 단일 재난에만 맞춰진 기존의 대응 체계와 사후 복구 중심의 현 행정으로는 복합재난의 위험을 막을 수 없습니다.
거제 피해 현장에서 드러나듯이 또한 지자체의 사전 예방과 체계적인 관리가 부재한 현장에서는 결국 시민들의 생명과 터전이 예고된 위험에 노출되고 맙니다.
그린피스는 현장조사 이후 자원봉사자를 구성해 수해지역 복구 활동을 진행하고, 장기적으로 피해 실태조사를 통해 기후재난 대응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기후재난으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그린피스의 기후재난 대응 캠페인에 지금 함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