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원전 재난 블록버스터 판도라
키워드로 살펴보는 영화 vs 현실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크게 벌어졌습니다. 다들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죠. 저는 그 사건 이후, 당연히 원전 보유국인 우리나라에도 큰 파장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원전의 안전상태도 면밀히 점검하고, 특히 사고 가능성이 높은 노후 원전의 처리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안전하다” 이 한마디로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어떤 상태인지 영화를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습 니다. 그래서 원전에 대한 관심들이 모아지고, 그 관심들이 거대한 힘이 돼서 이 나라의 안전을 위한 대책들이 마련되기를 바랐습니다.
- 판도라 박정우 감독 인터뷰 中
판도라의 박정우 감독이 영화를 만든 계기에 대해 밝힌 대답입니다. 실제로 박 감독은 “영화 속 현실성이 90% 이상”이라 얘기했는데요. 감독의 말은 사실일까? 판도라는 정말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몇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영화 속으로 다시 한번 들어가 보겠습니다.
키워드 1: 월촌리는 “부산 고리”! (Kori)
<영화 판도라 속, 주인공 재혁의 가족이 사는 ‘월촌리’; 사진 제공= © NEW>
먼저 영화의 배경이 된 월촌리로 들어가 볼까요?
월촌리와 한별 1호기, 실제 모델
억척스럽지만 끔찍하게 자식들을 아끼는 어머니,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가족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동네 친구들, 정겨운 사투리…
평범한 우리네 일상이 있는 이곳 ‘월촌리’의 실제 배경은 바로 부산시 기장군에 위치한 “고리”입니다. 좀 더 자세히는 부산과 울산에 걸쳐 있는 고리 원전 단지에 인접한 작은 마을이죠.
현재 우리나라에서 운영 중인 총 25기의 원자력발전소 중, 바로 이 고리 원전 단지에만 7기의 원전(고리 1~4호기, 신고리 1~3호기)이 밀집되어 가동 중입니다. 영화 속에서 폭발이 일어난 한별 1호기는 그중에서도 ‘고리 1호기’를 모델로 하고 있지요. 한별 1호기의 실제 모델이 고리 1호기인 것을 암시해 주는 장면은 영화 곳곳에서 나옵니다.
배우 정진영 씨가 분한 박 소장이 노후된 한별 1호기의 위험성을 알린 후 좌천되는 설정 기억하시나요? 실제로 고리1호기는 설계수명 30년에서 무려 9년을 넘겨 지금까지도 가동 중인 국내 최고령 원전입니다. 또다시 10년을 연장하려는 정부와 원전 산업계의 시도가 지난 2015년 시민들의 반대로 무산돼 내년 6월 마침내 영구폐쇄되지요.
<영화 판도라 속, 노후원전 반대 현수막이 걸려있는 재난현장; 사진 제공= © NEW>
더 중요한 단서는 지역입니다. 영화 중반부에 접어들면 격납건물 폭발이라는 긴급한 상황이 목전에 닥치는데요. 이때 총리는 강석호 대통령을 향해 발전소 인근 반경 30km 내 부산, 울산, 양산 시민 340만여 명이 살고 있어 대피가 어렵다고 보고합니다. 최근 통계를 바탕으로 보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부산의 250만, 울산의 100만, 양산의 30만, 총 380만 명의 시민들이 고리 원전 30km 반경 내 거주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모티브가 고리 원전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듯하죠? 고리 원전은 매우 특수한 위험성을 띄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먼저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영화 속 또 다른 키워드를 찾아볼까요?
영화 속 후쿠시마 원전사고
영화 판도라를 보며 제가 손에 땀을 쥘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 영화가 2011년 후쿠시마 사고 당시 실제 벌어졌던 상황을 상당 부분 그대로 가져와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단순히 가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진 일들이 영화 곳곳에서 표현돼 더 아찔했던 것이죠.
키워드 2: 지진(Earthquake)
판도라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첫 번째 공통점은 바로 ‘지진’이라는 자연재해로 사고가 촉발되었다는 점입니다. 후쿠시마 사고는 규모 9.0의 지진으로 시작됐고, 판도라에서는 규모 6.1의 강진으로 사고가 발생하지요.
<6.1 강진으로 폐허가 된 월촌리와 피난길에 오른 재혁의 가족들; 사진 제공= © NEW>
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4년여 전입니다. 하지만, 이제 지진은 우리에게도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모두 잘 아시다시피 지난 9월 경주에서 5.8 규모의 강진이 발생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때 경주 인근 월성의 4개 원전이 수동정지한 바 있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발생한 여진만 이미 500회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지속적인 원전 확대를 추진하는 원전업계와 정부는 우리나라 원전들의 내진설계가 규모 6.5~7.0 지진에도 버틸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주장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봐도 이 주장을 그대로 신뢰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운영 중인 25기의 원전 중, 규모 7.0을 견딜 수 있게 설계된 원전은 현재 시운전 중인 신고리 3호기뿐입니다. 나머지 24기 원전은 규모 6.5에 맞춰 내진설계가 되어 있지요.
만약, 영화에서처럼 규모 6.1의 지진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요? 우선 규모 6.5 지진에 비해 규모 6.1의 지진은 에너지의 세기가 약 ¼ 정도로 작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익숙한 ‘부실시공’, ‘부실검증’, ‘원전 비리’ 등은 없다고 가정할 때(즉, 모든 원전이 내진설계 기준대로 제대로 지어졌다고 한다면) 일견 안전할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원전의 내진설계 값이 사실상 지진 규모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최대지반가속도(PGA)’라는 수치를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전 바로 밑 10km 지하에서 지진이 발생할 때, 24기의 기존 원전은 최대지반가속도 0.2g에, 신규 원전은 0.3g에 버티도록 설계되어있습니다. 정부와 원전업계는 지진 규모와 최대지반가속도 사이에 비례관계가 성립하므로, 0.2g로 설계되면 규모 6.5의 지진을, 0.3g은 규모 7.0의 지진을 견딜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다릅니다. 건축물의 피해 정도를 결정하는 최대지반가속도는 진원으로부터 전파경로, 부지 지질 및 구조적 특성 등에 따라 지진 규모와 비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2007년 일본 니가타 지진의 규모는 6.8이었지만, 진앙에서 16km 떨어진 가시와자키 카리와 원전 건물에서 최대 0.69g의 최대지반가속도가 관측되었습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규모 6.1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최대지반가속도 0.2g로 내진 설계된 원전이 견뎌낼 수 있을지 역시 확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후쿠시마 사고를 예측했던 일본의 반핵평화운동가 히로세 다카시는 우리나라 원전의 내진 설계기준(0.2~0.3g)이 턱없이 낮다면서, 특히 내륙형 직하지진이 발생하면 내진설계가 큰 의미가 없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규모 6.5 이상의 지진이 발생해 24기의 원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상황 또한 배제할 수 없습니다. 1978년 우리나라에서 지진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큰 규모의 지진은 올해 9월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반도에서 최대 7.5 규모의 강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발생 가능성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과학적 관측 이전의 기록이긴 하지만, 기상청이 2012년 발간한 한반도 ‘역사지진 기록’에 따르면 문헌 추적을 통해 역사적으로 이미 우리나라에서 규모 6.7 정도의 지진이 발생한 적이 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우리 원전은 지진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주장, 이래도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키워드 3: 벤트(Vent)!
영화는 계속해서 긴박하게 전개됩니다. 원전에서는 두 가지가 절대로 끊기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물과 전기입니다.
물은 원자로를 지속해서 냉각하기 위해 필요하고, 냉각수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펌프가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전기 역시 절대 끊어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냉각수로 붕괴 열을 식히지 못하면 연료봉이 든 원자로 내부의 온도가 점점 상승하게 되고, 또 수증기가 발생해 압력이 높아지면서 원자로가 버티지 못하게 됩니다.
영화 판도라에서는 지진으로 배관이 파손돼 원자로가 냉각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에 따라 벤트작업을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게 되는데요. ‘벤트(vent)’란 원자로 내 급상승한 압력을 낮추기 위해 파이프를 통해 원자로 내부의 증기를 인위적으로 밖으로 빼내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벤트를 하게 되면 원자로 내부의 고농도 방사성 물질이 공기 중으로 배출됩니다. 하지만 벤트를 하지 않아 격납건물이 폭발하게 될 경우 훨씬 더 많은 방사성물질이 배출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벤트를 하게 되는 겁니다. 영화에서는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도 늦어지고 원전 내 상황도 악조건이라 작업이 지연됩니다. 시간이 흐른 후 벤트를 시도하지만 결국은 폭발이 발생하죠.
후쿠시마의 실제 상황으로 돌아가 볼까요?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지진이 발생하고, 그 후 3시 27분과 35분에 두 차례의 쓰나미가 밀려와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를 덮칩니다. 그 결과 3시 37분 후쿠시마 원전 1호기의 모든 교류 전원이 상실되고, 4분 안에 2, 3, 5호기도 전원을 상실합니다. 그리고 원자로의 온도와 압력이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후쿠시마 제1 원전 소장인 요시다는 3월 12일 오전 0시 6분에 1호기의 벤트를 준비하라고 지시합니다. 그러나 벤트를 실시해야 하는 1호기 주변의 방사선량이 너무 높아져, 작업 인부가 접근할 수 없게 되면서 벤트는 계속 지연됩니다. 영화와 꼭 같은 상황이죠?
벤트가 되지 않고, 정보도 부족하고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있자, 간 나오토 총리가 직접 헬기를 타고 후쿠시마 원전으로 날아갑니다. 도착해서 상황을 보니 방사선량이 너무 높아 작업이 계속 지연되고 있었죠. 총리는 불같이 화를 내고, 요시다 소장은 “벤트는 할 겁니다. 결사대를 조직해서라도 해내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또한 영화 속 장면이 오버랩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3월 12일 오후 3시 36분, 후쿠시마 1호기는 결국 폭발하지요.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제1 원전 폭발 사고 현장 위성사진 / © DigitalGlobe>
사고가 발생하면 이처럼 예상할 수 없는 상황들이 수없이 많이 발생합니다. 영화 속 가슴을 졸이게 한 장면들이 결코 상상이 아니었던 겁니다. 아무리 기술과 제도적인 측면으로 대비한다고 해도 충분치 않을 수 있습니다.
키워드 4: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 (Spent Nuclear Fuel Pool)
자, 마지막으로 판도라의 하이라이트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영화는 주인공 재혁(김남길 분)이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에 문제가 발생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투입되는 장면에서 클라이맥스에 다다릅니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 말이 좀 어렵고 생소하죠? 바로 원자로 안에서 꺼낸 폐연료봉, 즉 높은 방사선을 내뿜는 핵폐기물을 담아 놓는 수조를 의미하는데요. 다음은 사용후핵연료의 실제 모습입니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의 실제 모습; 사진 제공= © 위키미디어 커먼스>
사용후핵연료는 여전히 높은 붕괴 열과 방사선을 내뿜기 때문에 수년간 수조에서 물로 식히고 이후 영구처분시설로 옮겨 무려 10만 년 이상 철저히 격리시켜 보관해야 하는 ‘고위험 물질’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고준위(방사선량이 높은) 핵폐기물의 처분기술이나 저장시설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난 40년간 원전을 가동하며 발생한 이 위험한 폐기물을 원전 내부에 임시로 보관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도 생생히 나왔었죠?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 작업을 준비 중인 한별원전 직원들; 사진 제공= © NEW>
후쿠시마 사고 당시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까지 문제가 발생하면 훨씬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실제 당시 일본 총리였던 간나오토는 이를 고려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분석한 바 있다고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당시 후쿠시마에서도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 사고 가능성이 있었고, 이 경우 최고 일본 전체의 30% 면적인 원전 반경 250km 내, 일본 인구의 40%인 5,000만 명을 대비시켜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고 말이죠.
영화 판도라에선 다행히 이 최악의 상황을 막아준 평범한 영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린 어떻게 될까요?
우리나라 원전에서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 사고가 발생할 시, 그 재앙의 규모에 대해 분석한 결과가 최근 발표되었습니다. 지난 10월 대한민국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원자력 정책 관련 최고 권위자인 본 히펠(Frank N. von Hippel) 프린스턴대 교수와 재미 핵물리학자인 미국천연자원보호협회(NRDC)의 강정민 박사가 우리나라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의 위험을 경고한 겁니다. 이들은 고리 3호기 사용후핵연료 저장수조에 화재 사고가 발생했을 때 최악의 경우 우리나라 국토의 50%가 넘는 5만4천㎢가 피해를 입고,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인 2,430만 명이 피난을 가야 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지난 10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사용후핵연료 토론회, 사진 왼쪽-본 히펠 교수, 가운데-강정민박사; 사진제공 ⓒ 김광철>
결국 원전 사고는 주변 지역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영화 판도라는 현실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사건을 모티브로 우리에게 원전 사고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심각히 고민해 봐야 하는 큰 화두를 던져 준 것이죠.
“우리 정말 이대로 가만히 있어도 괜찮은 걸까요?”
이제 이 화두를 가지고 영화보다 더 참담할 수 있는 우리의 현실, 그 원인, 그리고 해결책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다음 글도 꼭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