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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마주한 미소, 강릉 산불 이재민들과 함께한 마음돌봄의 시간

글: 강성원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2023년 강릉 산불 피해 주민의 59%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고위험군으로 나타났으며, 재난 후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마음속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린피스를 비롯한 4개 기관이 뜻을 모아 이재민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지역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 '재난피해자 일상회복 지원사업(마음돌봄)'을 시작했습니다.

2023년 4월 11일, 붉은 화염이 휩쓸고 간 강릉에서 274세대, 551명의 이웃이 순식간에 삶의 터전을 잃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2024년 11월부터 2025년 5월까지, 그린피스는 강릉 산불 피해 주민 111명을 직접 찾아가 재난심리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참사가 지나간 지 먼 훗날의 조사였음에도 그 결과는 가슴 아팠습니다. 응답자의 무려 59%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고위험군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잿더미가 되어버린 마을 위로 시간은 흘렀지만, 주민들의 마음속 불길과 깊은 불안은 여전히 꺼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2023년 4월 강릉 경포 산불로 집을 잃은 이재민과 재난심리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2023년 4월 강릉 경포 산불로 집을 잃은 이재민과 재난심리 실태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강릉 산불 이재민 일상회복을 위한 4개 기관의 협력

실태조사 결과를 마주한 우리는 이재민분들이 진정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실질적인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사 과정을 곁에서 함께했던 강릉시자원봉사센터 실무자가 강원특별자치도 사회서비스원에 ‘재난피해자 일상회복 지원사업’을 제안한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그린피스와 사람들에게 평화를 심리사회지원 교육원(이하 사평), 강릉시자원봉사센터(이하 센터), 강원특별자치도 사회서비스원(이하 서비스원)까지 4개 기관이 마침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2025년 12월 4개 단체가 재난피해지역 공동체 회복 지원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 © 강릉시자원봉사센터
2025년 12월 4개 단체가 재난피해지역 공동체 회복 지원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 © 강릉시자원봉사센터

4개 단체는 머리를 맞대고 치열한 논의를 이어갔습니다. 먼저 실태조사 결과를 상세히 공유하며 각 기관이 바라보는 지원 방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단기적인 일회성 프로그램을 넘어, 이재민들의 마음이 진정으로 치유되고 일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상처 입은 지역 공동체가 함께 회복되어야 한다는 점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그린피스와 사평이 오랜 시간 함께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가 반영되어 이재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어색함이 온기로 채워진 마음돌봄 프로그램 진행 현장

치열한 논의 끝에 마침내 첫 번째 프로그램의 막이 올랐습니다. 오랜 시간 이어졌던 공백을 깨고 이재민분들을 다시 맞이하는 자리인 만큼, '만남과 환대'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연결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부터 안정화 강의, 몸과 마음의 긴장을 푸는 스트레칭, 그리고 각자의 내면에서 회복의 자원을 발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단계까지 알차게 4개의 세션으로 구성했습니다.

참가자 그룹은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진행했습니다. 오전에는 10분의 이재민을 모시고 센터 3층에서 오붓하게 시간을 가졌고, 오후에는 경포 경로당으로 자리를 옮겨 20여 분의 이재민과 함께 온기를 나누었습니다.

행사 당일 아침, 센터 3층에서 세팅을 마치고 이재민분들을 기다리는 순간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실태조사 이후 정말 오랜만에 다시 뵙는 터라 '혹시 어색해하시진 않을까?' 하는 걱정과 반가운 마음이 함께 교차했죠. 하지만 약속 시간이 되자 한두 분씩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며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주셨습니다. 저희를 단번에 알아보시고 덤덤하게 건네주시는 따뜻한 한마디에 조마조마했던 걱정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집은 잘 지어지셨나요?" 정겨운 이웃을 다시 만난 것처럼 반가운 대화로 온 교실이 이내 꽃을 피웠습니다.

마음돌봄 프로그램에 참석한 이재민분들과 프로그램 전에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
마음돌봄 프로그램에 참석한 이재민분들과 프로그램 전에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

그렇게 본격적인 프로그램의 막이 올랐습니다. 사평 장동현 이사님의 매끄럽고 유쾌한 진행 덕분에 교육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죠. 트라우마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이재민분들은 "맞아요, 내가 딱 겪었던 마음인데 어떻게 이렇게 잘 아세요? 정말 놀랐어요!"라며 깊이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이어진 오후 프로그램, 나 자신을 지지하고 마음을 서로 다독이는 세션에서는 지켜보던 이들의 마음까지 뭉클해지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눌러 담았던 감정이 터져 나와 눈시울을 붉히는 분도 계셨죠. 한 참가자분은 "그 어떤 강의보다 내 마음을 가만히 공감해 주어서 참 좋습니다. 덕분에 마음에 큰 위안을 얻었어요"라며 벅찬 소감을 전해주셨습니다.

마음돌봄 프로그램 참여 후 감정이 터져 나와 눈시울을 붉히는 참가자
마음돌봄 프로그램 참여 후 감정이 터져 나와 눈시울을 붉히는 참가자

마지막으로 마치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고 힘을 내듯, 각자의 삶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내면의 에너지’를 찾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임이 끝날 무렵, 이재민분들의 얼굴에는 한층 밝은 미소가 감돌았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마음의 지도를 얻은 것 같아요. 이제는 정말 즐겁게, 힘차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따뜻한 인사가 장내를 가득 채웠습니다.

지속 가능한 일상 회복을 위한 법적·제도적 과제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며, 서로 손을 잡고 오늘의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 어떠셨나요?"라는 질문에 참가자분들이 전해준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무려 평균 9.9점! 현장의 열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다만, 현재 느끼는 주관적 고통지수를 여쭤보았을 땐 평균 5점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산불 참사가 지나간 지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문득 떠오르는 당시의 기억과 마음속 불편함은 여전히 이웃들의 삶 곁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슴 따뜻한 변화도 함께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도 이런 자리가 마련된다면 또 함께하시겠어요?"라는 물음에 단 한 분도 빠짐없이 모든 분이 "꼭 다시 오겠다"라며 답변 해주셨습니다.

자신의 지금의 몸과 마음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참석자들
자신의 지금의 몸과 마음 상태를 표현하고 있는 참석자들

마음 한구석의 아픔은 남아 있지만, 서로를 다독이며 희망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주민분들의 모습에서 공동체 회복의 뭉클한 씨앗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기후재난 이후 상처 입은 이웃들과 지역 사회가 진정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행 재난 안전 기본법상의 재난 대응 체계는 '예방-대비-대응-복구' 단계에서 멈추어 있어, 피해자들의 장기적인 마음 회복까지 품어주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번 강릉의 사례가 명확히 보여주듯, 재난 피해자들이 일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단발성 지원을 넘어선 지속적인 일상 회복 체계가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협업 단체는 장기 지원을 위한 논의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또한 그린피스는 서경대학교 유정 교수님과 함께 강릉 산불 이재민들을 대상으로 재난 후 지금까지 제도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고 계시었는지 추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가 매년 심화되는 지금, 재난 피해자의 장기적 일상 회복까지 지원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기후재난 대응을 위한 법적·제도적 안전장치 마련을 위한 활동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기후재난으로부터 우리의 일상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그린피스의 기후재난 대응 캠페인에 지금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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