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년 3 월, 사이토 카오리씨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소식을 약 60km 떨어진 그녀의 집 거실에서 TV를 통해 접했습니다. 방사선 피폭을 줄이기 위해 아이들을 실내에 있게 하라는 정부의 지시를 접하면서 그녀는 남편에게 대피해야 하지 않을까 물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그녀의 의견에 반대했고 더 이상의 논의를 거부했습니다.
사이토 씨는 아이들이 밖에서 놀고 싶어할 때나 옷을 끊임없이 빨아야 할 때 아이들과 다퉈야 했습니다. 계속되는 걱정은 그녀에게 심리적인 고통을 가했고, 결국 2011년 8월 그녀는 후쿠시마를 떠나게 됩니다. 1년 뒤에는 남편과도 이혼했습니다. 현재 그녀는 후쿠시마시에서 약 400km 떨어진 나가노현 산 속에 위치한 정부 지원 아파트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저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그 동안 너무 힘들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친척들은 후쿠시마에 있습니다. 아이들은 운이 좋으면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볼 수 있습니다. "

원자력발전으로 인한 이혼은 별로 기록되지 않고 있지만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문제입니다. 원전사고로 인해 얼마나 많은 부부들이 이혼했는지 정확한 조사는 없지만, 개인적인 진술들을 보면 수십에서 수백 명의 부부들이 갈라선 것으로 보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부인은 후쿠시마 현을 떠나고, 남편은 직장의 소재지 혹은 방사능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일본정부는 쓰나미, 지진, 원전사고가 발생한 후 도호쿠(동북) 지역의 약 270,000명이 아직까지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중 146,520명은 정부가 지정한 강제피난구역인 20km 이내 혹은 인근에 살고 있다가 비자발적으로 피난을 떠난 사람들입니다. 이 외에도 수만 명이 자발적인 피난을 떠났습니다. 피난민 중 1/3 정도가 60 대 이상의 고령자들입니다.

대부분의 피난민들이 후쿠시마현 주변의마을과 도시에 빽빽하게 급조된, 방 2개로 된 집에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임시 주택에서 살고 있는 피난민만 약 10만여 명입니다. 이 중 많은 집들이 벌써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머지 수천 명의 사람들은 친척집에 얹혀 사는 상황입니다.

세가와 유키씨와 어린 세 자녀들은 원래 후쿠시마현 코리야마시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자동차로 3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도쿄 북부 외곽에서 정부가 건설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남편인 세가와 요시노부씨는 원래 거주지인 코리야마시에서 생활하며 주말에만 차를 몰고 와 지낸다고 합니다. 다른 많은 피난민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힘든 점은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던 친지 및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2013년 11월, 정부 고위급 관계자 한 명이 대부분이 피난민들은 2011년부터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많은 피난민들이 원래 살던 곳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는 점입니다. 여당인 자민당의 이시바 시게루 사무총장은 모든 사람들을 복귀시키겠다는 정부의 정책을 뒤집는 “시점이 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가와 가족과 같은 피난민들은 여전히 불확실 속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장 오염된 지역(연간 방사능 피폭량이 최소 50밀리시버트가 넘는 곳)은 대부분이 “귀환곤란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귀환곤란구역”이라는 말 자체도 영원히 실향민으로 살아가게 될 사람들에 대한 정부의 완곡한 표현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후쿠시마의 제염작업이 수십 년이 걸리거나, 많은 지역이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이라는 점을 정부가 인정하려들지 않는다고 비판합니다. 정부가 인정하게 되면 현재 멈춰 있는 48개의 원전을 재가동하려는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인정 없이는 수천 명의 피난민들이 삶의 터전과 자산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배상을 요구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피난민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후쿠시마 원전 인근의 심각하게 오염된 지역들에 대해 영구적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지 않는 한 피난민들은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피난민들이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리라는 희망을 접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충분한 배상금을 원하고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피난민들은 그 동안 절망감을 느껴왔습니다. 지역 공무원들에 따르면 피난민들은 중증의 우울증을 겪고 있고, 조기 사망 그리고 최악의 경우 자살까지 발생되고 있습니다. 2013 년 12 월,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은 이러한 비극과 관련해서 또 하나의 중요한 숫자를 보도했습니다. 지진, 쓰나미, 원전사고로 인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3개 현 중 하나인 후쿠시마 현에서 피난으로 인한 간접 사망자 수(1,605)가 지진과 쓰나미로 발생한 직접 사망자 수(1,603)를 넘어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숫자 역시 과소평가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칸노 시케키요씨는 이 숫자에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2011 년 6 월, 칸노(54)씨는 오백만 엔을 빌려 건축한 퇴비 창고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습니다. 그는 가족들에게 "원전 재앙만 없었더라면…”이라고 쓴 유서를 남겼습니다. 후쿠시마 사고로 인해 그가 운영하던 목축업은 망했지만 20km 밖의 소마시에 살았다는 이유로 단 한 푼의 배상금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미망인은 현재 사고가 난 원전의 운영자인 도쿄전력(TEPCO)을 고소해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정부는 후쿠시마 내 20km 피난 구역의 일부에서 피난 지시를 해제하고, 피난민들이 낮 시간에는 그들의 원래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해가 지면 미난미소마, 나미에 그리고 다른 마을의 보안 요원들이 사람들에게 떠나도록 지시합니다.

2013 년 나미에 시청의 한 조사에 따르면 주민의 37.5 %가 자신의 원래 삶을 포기했다고 답했고, 비슷한 비중의 사람들이 “확실치 않다”고 답했습니다. 19%의 주민들만이 돌아갈 것이라고 답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 조차도 비판적인 시각이 존재합니다. 나미에에서 자신이 키우던 소들을 버리고 떠나는 것을 거부한 채 살고 있는 요시자와 마사미 씨는 “여기에는 학교, 가게, 교통수단 등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왜 여기에 영구적으로 살기 위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나요?”

 

[#후쿠시마를잊지마세요] 피해주민들의 이야기 더 알기 | 불확실의 나날들 2 - 방사능 오염제거를 둘러싼 논란